돈을 관리하려고 마음먹으면 가장 먼저 예산부터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 달에 얼마를 쓸지 숫자를 정하고 각 항목에 금액을 배분하면 계획이 완성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생활비를 기록해 보면 숫자를 먼저 정하는 방식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소보다 교통비가 많이 발생할 수도 있고, 계절에 따라 생활용품 지출이 달라질 수도 있다. 가족 행사나 이사처럼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생활비 예산은 처음부터 완벽한 숫자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기보다 현재의 생활비 구조를 파악하고 앞으로의 지출 범위를 정해 보는 과정으로 접근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예산을 세우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다. 내가 매달 반드시 사용하는 돈은 얼마인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비용은 무엇인지, 가끔 발생하는 지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예산을 세우기 전에 실제 지출부터 확인하기
예산을 처음 만드는 사람이라면 예상 금액부터 적기보다 과거의 지출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최근 몇 달 동안 사용한 생활비 기록이 있다면 월별로 비교해 볼 수 있다. 가계부가 없다면 통장이나 카드의 거래 내역 등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을 활용해도 된다.
이때 한 달의 총액만 확인하기보다는 주요 항목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주거 관련 비용
- 식생활 비용
- 교통비
- 통신 및 정기 서비스 비용
- 생활용품
- 취미와 여가
- 기타 지출
이렇게 항목을 나누면 생활비가 어느 부분에서 주로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여러 달의 기록을 함께 보면 한 달만 확인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특징이 나타난다. 어떤 비용은 매달 비슷하게 유지되고, 어떤 비용은 특정 달에만 크게 증가할 수 있다.
예산은 미래의 숫자를 정하는 일이지만, 그 숫자를 정하는 근거는 과거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셈이다.
예산은 '쓸 수 있는 돈'을 구분하는 과정이다
생활비 예산을 생각할 때 흔히 '이번 달에는 얼마까지 쓸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먼저 돈의 목적을 구분해 보는 것이 좋다.
한 달에 들어오는 돈이 있다면 그중에는 이미 사용처가 정해져 있는 금액이 있을 수 있다. 주거비처럼 매달 반복되는 비용도 있고, 생활에 필요한 식비나 교통비도 있다.
반면 사용 시점이나 금액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돈도 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전체 금액만 놓고 생각하면 실제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과대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예산을 세울 때는 '전체 수입에서 얼마를 쓸까'보다 '이미 예정된 지출을 제외하고 어떤 범위에서 생활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이것은 특정한 금융 상품을 선택하는 문제와는 다르다. 단순히 자신의 생활에서 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구분하는 과정이다.
고정비와 생활비를 먼저 배치한다
앞서 살펴본 고정지출과 변동지출의 구분은 예산을 세울 때도 활용할 수 있다.
먼저 매달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확인한다. 주거비나 정기적인 납부금처럼 쉽게 변경하기 어려운 비용은 생활비를 계획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다음 식비나 교통비처럼 실제 생활에 필요한 변동지출을 살펴본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반드시 필요한 비용'과 '생활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비용'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
이후에 취미, 외식, 쇼핑처럼 개인의 선택에 따라 규모가 달라질 수 있는 항목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순서를 사용하면 예산을 무리하게 세우는 것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제 생활에서는 매달 상당한 비용이 필요한데 단순히 이상적인 절약 금액만 생각해서 지나치게 낮은 예산을 설정하면 며칠이나 몇 주 뒤 계획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예산은 지키기 어려운 목표를 만드는 것보다 현실적인 생활 범위를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편이 좋다.
일회성 지출을 따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
생활비를 계획할 때 자주 놓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매달 발생하지 않는 비용이다.
어떤 달에는 병원비가 아니라도 가전제품 교체, 경조사, 여행, 이사 관련 비용, 계절용품 구입처럼 평소보다 큰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비용은 일반적인 월 생활비와 성격이 다르다.
한 달에 한 번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정 기간마다 반복되는 비용이라면 생활비를 계획할 때 미리 고려하는 것이 편리하다.
예를 들어 겨울마다 난방 관련 비용이 증가하거나 특정 시기에 가족 행사가 반복된다면 과거 기록을 통해 그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래의 금액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이 아니다.
'평소와 다른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산에 반영하는 것만으로도 갑작스러운 지출을 만났을 때 당황하는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예산은 한 번 정하면 바꾸지 않는 계획이 아니다
예산을 처음 정하면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생활 환경은 계속 변한다.
이사를 하거나 출퇴근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고, 식사 습관이나 취미가 바뀔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면 생활비의 구조 자체가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예산 역시 기록을 바탕으로 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식비를 일정 수준으로 예상했는데 몇 달 동안 실제 지출을 확인해 보니 계속 다른 패턴이 나타난다면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단순히 예산을 지키지 못했다고 판단하기보다 처음에 세운 예산이 현재의 생활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예산은 시험 점수가 아니다. 계획과 실제 생활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를 확인하고 다음 계획에 반영하면 된다.
너무 많은 항목으로 나누지 않는 것이 좋다
예산을 세울 때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지나치게 세밀하게 분류하는 것이다.
식비 하나만 해도 장보기, 외식, 배달, 간식 등 여러 항목으로 나눌 수 있다.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 택시, 자동차 관련 비용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세부 분류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런 방식이 유용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항목이 너무 많아지면 매번 지출을 어디에 넣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고, 기록 자체가 귀찮아질 수 있다.
처음 예산을 만드는 단계라면 자신의 생활에서 의미 있는 정도로만 분류하는 것이 좋다.
기록을 계속하면서 특정 항목을 자세히 볼 필요가 생겼을 때 세분화해도 충분하다.
예산 관리의 핵심은 복잡한 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실제 생활과 비교하면서 조정하기
예산을 세운 뒤에는 실제 지출과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 계획했던 금액과 실제 사용한 금액을 나란히 적어 볼 수 있다.
이때 단순히 초과 여부만 보는 것보다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상보다 식비가 많았다면 식사 횟수가 늘었는지, 장보기 방식이 달라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교통비가 늘었다면 이동 횟수나 이동 방식에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특정 항목의 지출이 줄었다면 왜 줄었는지도 기록할 수 있다.
이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면 처음에 세운 예산보다 실제 생활에 더 가까운 기준을 만들 수 있다.
결국 좋은 예산은 처음부터 정확한 예산이라기보다 실제 기록을 통해 조금씩 현실에 가까워지는 예산이라고 볼 수 있다.
마무리
생활비 예산을 세우는 일은 무조건 지출을 줄이는 계획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먼저 과거의 지출을 확인하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비용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비용을 구분한 다음 자신의 생활에 맞는 범위를 정하는 과정이다.
특히 매달 발생하지 않는 일회성 지출까지 생각하면 특정한 한 달의 숫자만 보고 생활비 수준을 판단하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예산을 만들 필요도 없다. 실제 생활과 계획 사이에 차이가 생겼다면 그 이유를 기록하고 다음 달 계획에 반영하면 된다.
돈을 관리하는 습관은 한 번의 완벽한 계획보다 기록하고, 비교하고, 다시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다음 글에서는 예산과 함께 자주 사용되는 개념인 비상 상황에 대비한 생활자금 관리를 투자나 금융상품 이야기가 아닌 일상적인 현금흐름 관리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FAQ:
Q. 생활비 예산은 매달 새로 만들어야 하나요?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면서 실제 생활에 맞게 필요한 부분만 조정하는 방식이 편리합니다. 생활환경이나 지출 패턴이 바뀌었다면 기존 예산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예산보다 돈을 많이 썼다면 예산 관리에 실패한 것인가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거나 기존 예산이 실제 생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초과된 금액과 그 원인을 기록하고 이후 계획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예산 항목은 몇 개 정도로 나누는 것이 좋은가요?
정해진 개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록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자신의 소비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큰 항목으로 시작하고 필요할 때 세부 항목을 추가하는 방법도 좋습니다.